4월에 안내드렸던 명왕성 도서소개 꿀알바 의뢰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기억 못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기억하는 청소년도 있었답니다. 산청중의 '신예안' 청소년이 감상문 형식으로 명왕성에 있는 '데미안'을 소개해 주셨어요. 데미안이 어떤 책인지, 신예안 청소년이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함께 읽어볼까요? ======================================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이란 책 속의 명대사이다. 데미안은 중3 필독서라서 이 책의 제목을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몇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고, 이 책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 「싱클레어는 선의 세계 속에 살고 있었지만, 언제나 악의 세계를 궁금해 했고 그 세계를 갈망했다. 어떨 때는 악의 유혹을 못 이겨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데미안’이 나타나 싱클레어를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 데미안의 도움으로 점점 성숙해지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자신이 한평생 부정해 오던 내면의 악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비로소 자신을 도와주던 데미안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데미안>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데미안이란 영어 Demian이 악마를 뜻하는 Demon과 비슷한 것이 우연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헤르만 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헤세는 모든 사람들이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악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데미안은 내면에 있는 ‘악’과 ‘선’을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이름의 비밀도 풀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큰 의문을 가졌다. ‘헤세가 주장하는 선과 악의 공존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사는 사회 속의 범죄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십중팔구 악이다. ‘악’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성찰하는 기회를 준다는 이점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이 위험한 ‘악’을 받아들이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 사람이 사는 삶에 ‘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데미안>이라는 책은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서 추리소설이나 로맨스 소설같이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소 글을 읽을 때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의문을 가지며 읽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싱클레어와 나의 삶이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도 싱클레어처럼 평화롭고 안전한 신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악의 세계에 자주 내 속에 있는 악을 만난다. 내가 그 악을 잘 이겨 낼 때는 괜찮지만 가끔 내 안의 악에게 지배당하면 그날은 참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바뀐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악을 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내면 속 데미안을 찾아내고 받아들여서 지금의 나처럼 악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데미안>의 명성을 들어 본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고 시도하는 것조차 꺼린다. 그리고 물론 이 책은 생각 없이 다른 책들과는 달라서 재미가 없을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쯤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전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