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칼럼

제목2026 운영진 워크숍2026-02-25 19:52
카테고리코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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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운영진 워크숍

시간은 이미 오늘이 어제가 되고, 지금이 내일인 시간입니다. 거실에 모인 젊은 얼굴들은 그런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그런 시간이기에 오히려 더욱 신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치킨을 주문하자, 빙수는 왜 주문할 수 없다고 뜨는 것이냐, 떡볶이에 치즈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고 한참 열이 올라서 끼어들 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요. 밤 12시 넘어서 야식을 주문하는 경험은 산청에서는 하기 어려우니까 신이 날 법도 하죠. 다시 말해 여기는 이 시간에 야식을 주문할 수 있는 곳이란 뜻입니다. 네. 우리는 부산 광안리에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모임을 갖는 중입니다. 오래된 슬라브 주택을 예쁘게 새로 다듬은 숙소를 보고 도착할 때부터 기분이 좋았던 청소년들은 다같이 밤산책을 하고 더욱 고양된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야식이라는 것은 주문할 때 제일 신나는 법 아니겠어요?

명왕성은 설립한 이후 매년 청소년 운영진들의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새로 지원한 청소년 운영진들이 한 해 명왕성을 잘 이끌어 가려면 명왕성이란 어떤 곳인지, 운영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 해 예산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 예산에 맞춰 어떤 일들을 명왕성에서 만들지 함께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시간 속에 운영진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도 워크숍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워크숍이라는 것이 운영진들에게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나누며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 눈을 반짝이는 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그들의 태도는 참아내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워크숍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3년 전부터 운영진 워크숍은 1박 2일의 여행 형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매력적인 활동입니다. 서로 서먹한 사이라도 여행하며 부대끼는 동안 마음도 제법 열리게 되고, 서로의 성향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죠. 같이 먹는 맛있는 음식,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해 보는 것은 여행 동료들 사이에 제법 탄탄한 결속감을 만들어 줍니다. 특히 밤이 영 재미없는 지리산 아래의 조용한 지역에서 살던 청소년들에게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밤은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경험이 됩니다. 먹는 재미, 낯선 곳을 거니는 즐거움, 점점 친근해지는 관계 등 즐길 거리를 채워 두고 그 틈새에 운영진의 역할을 고민하는 시간을 살짝살짝 배치합니다. 약간 들뜨고 유쾌한 기분에 잘 대접받는 느낌이 더해져서 그런지 청소년들이 워크숍 본연의 프로그램도 진지하게 참여하는 걸 봅니다. 올해도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은 잘 나누었고 청소년 운영진들은 그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표정인 걸 보니 첫 단추는 잘 꿰었다 싶습니다.

야식을 주문하느라 떠들썩한 거실에 슬쩍 고개를 디밀고 잠시 찬물을 끼얹습니다.
“여러분, 맛있는 거 많이 시켜 먹는 것은 좋은데 한 가지 당부를 드릴게요. 워크숍에 들어가는 예산은 다 후원인들께서 보내주신 것인데 내 돈 아니라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주문했다가 남기는 것은 후원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다음 세대, 그러니까 청소년을 위해 지원하고 후원하는 것은 당연한 책임일 수는 있지만 그 후원을 꼭 명왕성에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후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남기지 않을 정도로 주문하면 좋겠어요.”
지나치게 숙연해지는 분위기라 재빨리 말을 마무리하고 카드를 건네줍니다. 야식을 시켜 먹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다음날 우리 운영진들을 다음 일정을 거쳐 안전하게 집으로 모시는 것은 저의 몫이니 접시물같은 얄팍한 체력으로 하루를 더 버티려면 일찍 자야죠.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몇 번인가 잠을 깨서 뒤척이다가 조금 일찍 일어난 아침, 거실에 나와보니 뜻밖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주방에도 어제 먹었던 것들이 설거지가 되어 있고 배달용기도 세척되어 재활용품 함에 담겨있네요. 새벽까지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어수선한 상태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는 우리 운영진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입니다. 제가 일어나서 부스럭거리자 청소년들이 하나둘씩 눈을 비비며 나와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잠이 부족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워크숍이란 가족여행이 아니니까 힘을 내나 봅니다. 숙소에서 조금 일찍 나와 아침겸 점심을 먹고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후 산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정리를 시작합니다.

산청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흘깃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상대로 모두들 고개를 앞뒤 혹은 옆으로 꺾고서 깊이 잠들어 있네요.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도 하지만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운전할 생각입니다. 돌아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서로 같은 것을 위해 애썼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워크숍에서 청소년들이 운영진으로서 자각하기를 기대했고, 청소년들은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을 기대했겠죠. 저는 제 목적을 위해 청소년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썼고, 청소년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 운영진의 역할을 배우는 시간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알게 되었죠. 쉬지 않고 떠드는 만큼 선후배에게 허물없이 다가갈 줄 아는 M, 속 깊고 배려심 많지만 의외로 친구들 사이에서 할 얘기는 하는 S, 입은 조금 험하지만 넉살 좋고 추진력 있는 J, 생각보다 명왕성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H,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어색해 하지 않는 중심을 가진 K, 아직은 선배들 눈치를 보지만 호기심 많고 조곤조곤 물어볼 줄 아는 Y, 무심한 듯 다정하고, 자기 의견을 씩씩하게 밝히지만 낯가림이 있는 L 등 매력 넘치는 친구들과의 1박 2일은 보람찼습니다. 이들에게 저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궁금해집니다. 잔소리는 조금 하지만 제법 편한 사람 정도면 좋겠네요. 이틀 연속으로 긴 거리를 운전하느라 허리가 지끈거리지만 괜스레 운전대를 부여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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