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칼럼

제목거절의 의미2026-07-26 18:59
카테고리코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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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의미

 

손에 휴대폰을 쥐고 계속 만지작거립니다. 전화를 걸어야 할 텐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절이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이 아니라고 실망할 상대의 마음을 외면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것도 아닙니다. 고맙고 좋은 제안일수록 더욱 마음이 불편합니다. 상대에게 전하는 것만큼이나 제 안에 아쉬움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할 수 없죠. 휴대폰을 다시 들고 상대의 연락처를 검색합니다.

 

명왕성을 방문하는 어른들도, 이용하는 청소년들도 종종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어려워하곤 합니다. 특히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에서 방문하는 경우 저를 운영자또는 관리자로 칭하곤 합니다. ,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네요. 그럴 때면 저는 손사레를 칩니다.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청소년 운영진이 있는데 저를 운영자로 부르시면 안된다고 하면서요. 운영진들이 회의하며 명왕성 운영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 속에서 각자의 생각을 조율하고, 청소년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 것들을 짚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조정하는 사람인 것이죠.

그러나 조정자로서의 역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공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청소를 비롯해 수시로 유지보수하는 시설 관리자의 역할도 해야 하고, 청소년들이 결정한 것을 집행하면서 비용 지출이나 결산을 정리하는 역할도 합니다. 회의를 진행할 때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 마친 후 회의록을 정리하는 것도 제 몫입니다. 더 다양한 일들이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명왕성에 대한 외부의 소통창구 역할입니다. , 명왕성을 통해 청소년들의 협조가 필요하거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필요하거나,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때 저에게 연락이 온다는 말이죠. 그런 연락이 올 때 저는 늘 한결같이 말합니다. 청소년 운영진에게 전달은 하겠습니다만 청소년들이 싫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지난 주에는 산청군 평생교육과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산청이라는 지역을 배우면서 산청만의 굿즈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명왕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박물관과도 연계해 지역의 역사와 특징을 배우고, 디자이너를 강사로 초빙해 완성도 높은 굿즈를 만든다는 계획을 듣고 저는 설렜습니다. 공간의 특성상 공공기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기 어려웠는데 청소년들에게 의미도 있고 가시적인 결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명왕성이 참여한다는 것은 장점이 많아 보였으니까요. 어쩌면 지역 내에서 명왕성의 인지도가 올라갈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고, 산청군과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하는 파트너십을 맺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으로 열심히 설명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만 빠트리지 않고 이야기했죠. 그러나 결정은 청소년들이 하는 것이라고.

 

, 그리고 이제 운영진들의 거절을 전달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하반기 중에 최소 여섯 번에서 많으면 여덟 번까지 참여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시험이나 저마다의 꽉 찬 일정에 부담을 더할 것이 염려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전에도 부모와 함께 하는 보드게임 활동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운영진들은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거절했죠.

 

우리는 우리끼리 놀고 싶은데요.”

 

그때도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했지만, 운영진들에게는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명왕성다워서 다행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운영진이라는 이름은 청소년에게 붙여주고서 어른들이 제안이라는 형식으로 그들의 관점에서 좋아 보이는 것을 청소년들의 의사와 상관 없이 추진한다면 청소년 자치공간이라는 명칭이 무색해 지는 일이겠지요. 이번에도 저는 똑같이 거절의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 운영진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마음 편히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명왕성의 큰 가치인 것 같아요. 어른들이 제안했다가 소위 까이는것이 가능한 곳이야말로 청소년들의 주권이 보장된다는 것 아니겠어요?”

 

청소년 자치를 이야기할 때 어떤 것을 계획하고 어떻게 실행하는가에 초점을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때로 거절 역시 청소년 자치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명왕성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가치인 만큼 제가 잠시 품었던 기대들은 접어야 하겠죠. 그러나 오히려 다행입니다. 욕심때문에 본질을 벗어나는 순간 명왕성은 정체성을 잃을 겁니다. 그러면 다른 청소년 공간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을 겁니다.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제안을 스스로의 의지로 거절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명왕성 앞에는 청소년 자치공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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