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칼럼

제목잡다한, 그러나 중요한2026-06-29 19:42
카테고리코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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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그러나 중요한

 

출근하면서 명왕성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눈앞이 번쩍번쩍합니다. 순간 계단 오르는 중에 갑작스럽게 몸이 이상해진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었지만 원인은 명왕성 입구에 있는 센서등이었습니다. 센서등 고장이라면 보통 사람이 지나가도 켜지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가끔 마냥 켜져 있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깜빡깜빡도 아니고 이렇게 초당 10회 정도의 속도로 번쩍거리고 있으니 어질어질합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명왕성 청소를 합니다. 문을 열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으려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명왕성 출입문 너머로 여전히 센서등이 번쩍거립니다.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에도 좋지 않을 것이고 정신적으로도 이미 좋지 않습니다.

 

사다리를 가지고 올라가 덮개를 열어봅니다. 높이 올라왔는데 눈앞에서 전구가 번쩍거리고 있으니 균형감각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장갑 낀 손으로 서둘러 전구를 빼고는 가지고 올라왔던 새 전구로 갈아 끼웠습니다. 원래 센서등은 흰 전구였는데 새로 갈아 끼운 전구는 색온도가 낮아 노란 불빛입니다. 다시 덮개를 끼우고 내려와 명왕성으로 돌아갑니다. 마침 이용하는 청소년이 없어서 서류작업을 조금 하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합니다.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출입문 너머로 노란 불빛이 현란하게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전구가 문제가 아니라 등기구 자체가 문제였나 봅니다. 잠시 한숨을 쉬고 명왕성 카드를 챙겨 가까운 만물잡화점에 갑니다. 새로 등기구 하나를 구매해 계단을 올라오다가 노란 불빛이 어지럽게 번쩍이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명왕성 SNS에 올리면 구독하는 청소년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짧게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덧붙였죠.

 

클럽 가봤니? 불 깜빡이면 거기가 클럽이지.”

 

재미는 재미고,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다시 장갑을 끼고 사다리와 드라이버를 들고 와서 살짝 흔들리는 사다리를 조심조심 올라갑니다. 누군가 한 명쯤 사다리를 잡아주면 좋겠는데 오늘따라 청소년 한 명도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두꺼비집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전기를 끊지도 못하고 등기구를 교체했습니다. 이상 없이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나서 SNS에 영상 하나를 더 올립니다.

 

우리 센서등이 얌전해졌어요. 아쉽게도 이제는 사라진 계단통로 댄스타임

 

센서등을 고치고 난 이틀 후, 명왕성 출근해서 화장실을 열었더니 물난리가 났습니다. 화장실 벽면에 있는 청소용 수도꼭지는 꽉 잠가도 물이 한 두 방울씩 새기 때문에 아래에 플라스틱 양동이를 받쳐 두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물이 한 두 방울이 아니라 주르륵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양동이는 이미 넘쳐흘러서 화장실 바닥에 물이 흥건합니다. 저 수도꼭지를 해결해야 하는 날이 오늘인가 봅니다. 화장실 안쪽의 밸브를 잠가 두고 또다시 만물잡화상으로 갑니다. 화장실 수도꼭지는 시멘트로 완전히 고정시켜둬서 수도꼭지 자체를 교체할 수 없으니 손잡이를 돌려 뺀 후 수도꼭지 안쪽 고무패킹을 교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로 고무패킹만 팔지는 않으니 수도꼭지 하나를 사와서 새 수도꼭지를 분해해 고무패킹을 확보합니다. 화장실 수도꼭지의 머리를 제거하고 나니 조각난 고무패킹이 나옵니다. 고무패킹을 끼우고, 다시 수도꼭지를 조립하고, 밸브를 열어 물을 틀어보고, 물이 새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 도구들을 정리합니다. 끝이 아닙니다. 물이 잔뜩 고인 화장실을 치워야죠. 요즘 기후가 이상해서 6월 말인데도 덥지 않아 좋다고 했지만 화장실 정리를 마무리하고 나오니 등에 땀이 배어나옵니다.

 

특별한 사건처럼 이야기했지만 8년이나 명왕성에서 생활하다 보면 수시로 겪는 일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나의 공간을 유지한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보살핌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이죠. 가끔 그런 일들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면 그런 유지보수 활동도 청소년이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죠. 그렇지만 대개 문제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쪽은 지속적으로 출근하는 코디네이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청소년들의 시간을 맞춰서 함께 모여 해결하기엔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도 못하고, 섣불리 손을 대기에는 청소년들이 아직 지식이나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왕성에서 청소년들이 더 힘써야 할 부분은 운영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시행하는 것이기에 공간의 유지나 관리에 대한 것은 직접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렇게 잡다한 일들을 코디네이터가 수습하기에 청소년들이 운영자,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기술들을 배우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명왕성은 청소년들이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공간의 운영, 민주적 소통기술을 활용한 회의, 실제로 반영되는 자치의 경험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의 요소들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청소년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의 중요한 역할일 수도 있겠습니다.

 

장황하게 명왕성 유지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는 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생색내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저 명왕성 회의할 때 청소년 운영진들에게 간단하게 보고하는 정도죠. “센서등이 고장나 교체했어요,” “화장실 수도꼭지를 수리해서 이제 물이 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제법 고생을 많이 했으니 운영진들이 시큰둥하게 넘어가면 약간 과장해서 얘기해 볼까 해요. 같이 꾸려가는 공간인데 고생한 사람에게 수고했다고 한 마디 하는 것도 운영자가 해야 할 역할이니까요.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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