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시간의 힘
명왕성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이 오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죠. 처음 명왕성을 시작할 때는 호기심을 가지고 찾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청소년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고, 특히 산청처럼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더욱 찾기 힘드니까요. 이웃 지역인 함양이나 남원(산내)에서 청소년 공간과 그 운영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분들이 오셨을 때는 가벼운 소개가 아니라 제법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다른 지역의 청소년 공간 개설로 이어졌을 때는 고작 몇 마디 나눴던 것뿐인데 마치 그 공간의 설립에 명왕성이 뭔가 기여라도 한 듯 내심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찾아오신 손님들은 산청 청소년 수련관의 청소년 지도사 선생님들이셨습니다. 수련관의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으면 명왕성에서 자발적으로 안내도 하고, 명왕성에 행사가 있을 때는 청소년 수련관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는 등 서로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으나 자주 왕래하거나 깊이 교류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련관 선생님들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었죠. 청소년 수련관 3층에 청소년 자유공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입을 떼신 선생님은 명왕성 운영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셨습니다. 청소년 자유공간은 일단 한 분의 청소년 지도사가 담당하게 될 예정인데 공간의 규모가 작지 않아 청소년들과 함께 관리를 할 계획을 갖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명왕성처럼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것 같았습니다.
사실 명왕성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소년 공간과는 현저히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대상이 다릅니다. 명왕성은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연령의 청소년들부터 만 24세까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공공기관의 청소년 공간들은 더 폭 넓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기에 어려움이 더 많겠죠. 그 외에도 청소년들의 활동에 있어 참여 인원이나 결과의 완성도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성인이 함께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청소년들의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현금을 그 대가로 지급한다는 점 등이 특히 크게 다른 점일 것입니다. 그런 만큼 소위 ‘관’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나 기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취약점도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이 특히 그렇습니다. 명왕성의 방향은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자유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기도 하지만 언제나 불확정성에 대한 스트레스를 품어야 하는 한계를 갖는 것이죠.
이런 차이점들과 함께 명왕성에서 해 온 일들을 말씀드리면서 아마 청소년 수련관이나 앞으로 개설될 청소년 자유공간에서 도입하기 어려운 점이 많을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청소년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 해야 할 것, 해 볼 수 있는 것 등은 명왕성이든 청소년 자유공간이든 적용될 수 있겠죠. 이를테면 건의함처럼 청소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되 청소년들의 건의는 최대한 빠르게 대응해서 대답을 들려줘서 참여하면 바뀐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거나, 최소한 참여했을 때 무시당하지 않고 성실히 반응해 준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 혹은 청소년들이 의리 때문이라도 참여하도록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아야 한다는 것 등.
한참 떠들다가 문득 청소년 전문가들 앞에서 잘난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급히 말을 잘랐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손님들이 되돌아간 후에 만남을 곱씹어 보니 이런 질문들에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은 명왕성에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과 시간을 쌓아간 덕분이라는 걸 떠올리게 됩니다. 다양한 청소년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명왕성을 거쳤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와서 운영진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크게 생각지 못하던 청소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열심히 참여하려고 했지만 동료들이 그의 의욕만큼 동참하지 않아 힘들어 했던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한 해 운영진들이 대부분 이름만 얹어 놓고 회의에도, 행사에도 영 참여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죠. 그 시간 속에서 내 생각대로 청소년들이 움직이지 않아 속상해하다가 청소년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닫고 해탈하듯 마음이 편안해진 순간 등 저 나름의 배움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서로 합이 잘 맞아 떠들썩하게 뭔가 만들어 가는 걸 재미로 여겼던 청소년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또 무엇이 이런 동력을 만들어 내는지 열심히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스스로 던지는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잘 안되는 점이 있으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묻습니다. 대답하면서, 대답하려고 생각하면서 명왕성은 궤도 위를 걷고 있는 셈이죠.
* 청소년 기본법 기준 청소년의 연령은 9세 이상 24세 이하 |